고객센터
 
 
  최종편집: 2018년 01월 21일
 

  오감만족

  먹거리 정론

  추천맛집

  요리쿡 조리쿡

  맛집체험기

  전국맛집

  익산 식당가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부부동반 명절 장보기

 

아내는 설 명절 때면 설렘과 즐거움이 겹친다. 보고픈 일가친척을 만날 수 있어 설레고, 가족 동참 제수음식 장만에 즐겁다. 가족이 함께하는 설은 정말 뜻깊다. 조상의 음덕을 기리고, 가정의 화목을 다질 수 있어서 좋다. 평소 뜸했던 자녀와의 대화 물꼬도 자연스럽게 틀 수 있어 정겹다. 오가는 덕담에 행복이 넘친다. 이러니 명절이 번거롭기는커녕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 그 첫걸음은 부부 동반 장보기에서 시작된다.

2월 14일 늦은 오후, 아내와 함께 삼천포 중앙시장을 찾았다. 설날 대목치고는 그렇게 사람들이 붐비지 않았지만 명절 분위기는 가득하다. 안면 있는 어물전 앞에 다다르자 “제수음식 사러 오셨네요.”라며 주인이 우릴 반갑게 맞는다. 좌판 위에는 생선이 줄느런히 놓여 있었다. 바다도시답게 싱싱하고 때깔 좋다. 불쑥 군침이 감돈다. 그때 아내는 구입물품 쪽지를 꺼내들고 구입할 물건을 고른다. 몇 년간 친분을 쌓은 사이라 속거나 바가지 쓸 염려 없어 안심이다.

조리가 까다로운 음식은 반찬가게에서 해결한다. 주인은 “손님들이 집 반찬 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조리가 까다로운 음식은 반찬가게에서 해결한다. 주인은 “손님들로부터 집 반찬 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시장 한복판에 ‘큰들해물’ 간판을 내걸고 통 큰 장사를 하고 있는 김미정(50.사천) 씨. “요즘 장보러 오는 연령층은 어떠냐?”는 물음에 “30대 젊은이부터 어르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예전에는 시장통에 장바구니 든 부부를 만나기 흔치 않았는데, 지금은 심심찮게 본다.”며 부러운 표정을 짓는다. 특히 주말이면 결혼 이주여성 부부들이 줄지어 시장을 찾는다는 말도 덧붙인다. 부부가 함께 장보기를 한다면 필요 없는 식재료를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맛에 맞춰 먹을 만큼만 구입하면 되기 때문이다.

때마침 그 옆에 5일장이 서는 날이다. 사람 사는 냄새 물씬 풍기는 전통시장을 마다할 리 없다. 아내가 성큼 앞선다. 멀티미디어 공간 저잣거리는 대목을 맞아 생동감 넘친다. 상큼한 야채류는 우리 차지다. 각종 나물 무침에 정성을 들이는 아내는 이곳저곳을 돌며 요리조리 살펴보고 나물류를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어 반찬가게로 향한다. 집에서 조리하기 까다로운 제품을 구입하기 위해서다. 

동네 슈퍼 한쪽에 자리한 조그마한 반찬가게 ‘맛사랑’. 주인 권애경(52.사천) 씨는 11년째 건강반찬을 팔면서 지역민들의 신망을 받고 있다. 이곳에서도 남자 고객이 20%로 꾸준히 늘고 있다 한다. 권 씨는 “내 가족이 먹는 음식을 만든다는 심정으로 반찬을 조리하고 있다.”며 “손님들로부터 집 반찬 같다는 말을 들을 때면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20여 가구로부터 설날 나물 주문을 미리 받아놨다는 말도 곁들인다. 나처럼 이곳을 떠난 사람들이 ‘맛사랑’을 잊지 않고 방문할 때는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낀다.

우리 가족에 적합한 차례상에 음식을 올리니 15만 원 정도 들었다. 간소한 상차림은 음식물 쓰레기까지 줄여주니 일거양득이다.
우리 가족에 적합한 차례상에 음식을 올리니 15만 원 정도 들었다. 간소한 상차림은 음식물 쓰레기까지 줄여주니 일거양득이다.

아내와 함께한, 반나절 발품 들인 제수 장만 장보기는 즐겁고 유익했다. 이젠 손품 팔 일만 남았다. 음식 장만은 아내가 주가 되고 나는 보조를 하지만 산적 부치는 일은 내 몫이다. 아들은 서빙하고 설거지를 거든다. 차례상 마련에 온 가족이 참여하다보니 반나절도 채 안 걸린다. 상차림에도 요령이 있다. 가족 수에 적합한 차례상의 크기가 있는데, 4인 가족인 내 집은 가로 90㎝, 세로 75㎝다.

상 크기에 맞춰 음식을 마련하니, 올해 15만 원 정도 들었다. 간소한 맞춤식 상차림은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에도 그만이다. 차례 후엔 자식들에게 시조(始祖)와 본관(本貫), 가훈 등 집안 뿌리를 알려주고 덕담이 적힌 세뱃돈 봉투를 건넨다. 성묘를 마치면 영화 구경을 간다. 가족 전체 관람가 ‘이다(Ida)’를 예약하니 즐거움이 앞선다. 외가로 향하면서 아이들은 이종사촌 만날 생각에 또 다시 마음 설렌다.

명절 제수음식 구입 때는 꼭 구입항목이 적힌 메모지를 지참한다. 덕담이 적힌 세뱃돈 봉투는 자식들 차지다.
명절 제수음식 구입 때는 꼭 구입항목이 적힌 메모지를 지참한다. 덕담이 적힌 세뱃돈 봉투는 자식들 차지다.
  
아내 친구의 명절나기는 어떨까. 고교 동창인 장혜숙(52.진주) 씨와 구미정(53.진주.교사) 씨의 경우는 대조적인 양상이지만, 여성 명절 신드롬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가정이다.

공무원인 남편을 둔 장 씨는 설날 때 무척 힘들다고 한다. 남편은 뒷짐만 지고 있기 때문이다. 평소 집안일 거들기를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하는 남편인데, 유독 시가만 가면 ‘나 몰라라’ 한단다. 집안 어르신들이 남자가 부엌을 들락거리는 걸 못마땅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집에선 딸이 밥상을 차리고 남편이 설거지 하며 여왕(?) 대우를 받았는데, 명절이면 영 딴판이니 속이 탄단다. “그럼, 명절 스트레스가 대단하겠네요.”라고 동조하고 나서자, 그렇지 않단다. “상차림이 끝나면 몰래 불러내 야경을 즐기며 드라이브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단번에 사라진다.”고 말한다. 오히려 가사 도우기가 일상화된 남편이 고맙다고 두둔했다.

교사인 구 씨는 최근 남편이 명퇴하면서 행복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결혼 후 남편이 차려준 첫 밥상을 받고선 감격했다고 한다. 집안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니 살맛이 난단다. 곁에서 아버지 눈치만 보던 아들도 손수 걸레질을 해대며 난리다. 직장을 다니는 아내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의 모습에 반할 정도란다. 구 씨는 “남편이 인생 2막을 설계하면서 집안일에 눈을 뜨니, 이번 설날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시간이 될 것 같다.”고 즐거워한다.

제수 장만에서 상차리기, 설거지까지 온 가족이 모두 나서니 피곤은 반으로 줄어들고, 기쁨은 배로 늘어난다. 여성 명절 신드롬을 타파하는 가정이 늘어날수록 설날은 즐겁고 풍성하다. 


허훈
정책기자단|허훈hhsju@hanmail.net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추구하는 프리랜서. 관심분야는 교육, 환경, 보건이고, 우리말글 살리는 데도 힘쓰고 있음.

 

2015.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