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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편집: 2017년 05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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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건너 뿌리내린 백제의 핏줄

 

백제 임성태자의 45대손 오우치 기미오, 다카코 부부

지난 10월 3일 일본에서 비보가 날아왔다. 익산시 명예 홍보대사이자 오우치 기미오씨의 부인 오우치 다카코씨가 7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는 소식이었다. 이에 익산시는 10월 7일 일본으로 조문단을 보내 그동안의 감사함을 전달하고 왔다.


 # 임성태자와 오우치 가문

일본의 한 가문이 왜 익산시의 명예 홍보대사일까? 이러한 의문이 생길 것이다. 이에 대해 설명하자면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제 성왕의 셋째 아들인 임성태자는 성왕(AD 494)이 신라의 복병에 의해 피살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대만을 거쳐 일본에 건너갔다. 임성태자 일행은 당시 백제의 문화예술을 일본에 전래 하여 일본불교 확산에 기여하였으며, 백제의 제련기술을 통하여 일본의 철기 발전에 많은 도움을 줬다.


그 후 백제의 선진기술과 예술 등 수많은 문화를 전수한 것에 인정을 받아 오우치 영토를 하사받고 그 세력을 키워나갔으며 이후로는 일본 서부지역의 주요 국제 무역지를 차지하고 막대한 이익과, 권력을 통하여 일본 명문가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오우치가문의 방문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만 보더라도 150년간에 걸쳐 200회가 넘을 정도로 조선과 활발하게 교역을 하였는데 그들은 특별히 사신을 통해 이러한 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나는 백제의 후손입니다. 일본 나라 사람들이 나의 세계(世系)와 나의 성씨(姓氏)를 알지 못하니, 갖추어 써서 주시기를 청합니다.” - 정종실록 1년 7월 10중에서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법, 오우치가는 16세기 정쟁에 휘말려 모리가에 의해 몰락하게 된다. 그러나 오우치가문의 정치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21세기가 되는 지금도 야마구치 시민들은 ‘오우치 문화 탐방회’ 까지 조직하여 그 시대를 흠모하며 넋을 기리고 있다.
 

 # 백제의 왕도 익산과의 인연.

현재는 일본이 한국과의 국교가 정상화 되고 백제의 임성태자와 오우치 가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일반 시민뿐만 아닌 지방 정부에서도 크게 주목하는 역사로 인식되지만, 36년간의 식민통치 속에 조상이 백제인 이라는 사실은 명예로운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오오치 가문은 이러한 사실을 오랜 기간 숨겨 지내왔으며 그때 중요한 자료가 될 만한 가보들 까지도 많이 불타 없어졌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족보를 지킨 기미오씨의 어머니를 이어 오우치 가문의 45대손인 오우치 기미오, 다카코 부부는 2009년 자신들의 뿌리를 찾고자 익산에 방문하여 왕궁면에 위치한 쌍릉을 참배하고, 익산시 문화·관광발전을 위해 써달라며 100만엔(1,100여만원)을 기탁한 바 있다.


  “시대를 넘고 대를 이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조상 땅에 오늘 우리는 돌아왔습니다. 저의 오랜 염원이 이뤄진 기쁨과 흥분으로 가슴이 북받쳐 오릅니다.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시간을 되돌려 직접 조상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쌍릉 앞에서 익산시에서 마련한 백제의상을 입고 참배를 드리며 오우치 기미오씨가 1,400여년만의 귀향을 알리는 축문의 시작부분이다.

이후 백제왕족의 후예로 백제왕도 익산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뜻을 전해와 익산시는 2010년 오우치 부부를 익산시 명예 홍보대사로 위촉하였다. 이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같은해 오우치 부부와 ‘오우치 문화 탐방회’ 등에서 합계 31명이 익산 서동축제에 방문하였다. 세월호 사건에 의해 축제가 진행되지 못한 2014년을 제외하고 2015년까지 꾸준히 서동축제 무왕제례에 참석해 몸소 백제문화를 체험하고, ‘고도’ 익산시를 국·내외에 알리는 역할을 해오며 일본 내에 백제와 익산의 문화를 알리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해왔다.


  # 그동안의 감사를 전하며

2016년 오우치 부부는 부인 다카코씨의 건강 문제로 인하여 서동축제에 참여를 하지 못하고 치료에 힘썼지만 아타깝게도 2016년 10월 3일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익산시 문화산업국장과 익산시 문화재단 김복현 원장 등으로 구성된 조문단은 일본 스바현 후나바시에 마련된 오우치 다카코씨의 빈소를 찾아가 조문을 하고 그동안의 감사와 위로를 전했다.

이에 오우치 기미오씨는 “멀리 한국에서부터 찾아와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백제와 익산의 문화를 일본에 알리는데에 더욱 노력할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오우치 부부는 자신들이 백제인이라는 사실과 일본이라는 국가의 형성에 커다란 공헌을 한 임성태자의 후손임을 잊지 않고 살아왔다. 1400년의 시간동안 조상의 뿌리를 잊지 않고 바다건너에서 그 명맥을 이어온 오우치 가문, 그리고 용기를 내어 한․일 양국간의 징검다리 역할을 자처했던 오우치 부부의 노고에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백제 임성태자와 오우치 가문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면 한국 방송공사 KBS 전주총국에서 2003년 제작한 백제 4부작 중 1편 ‘일본 최고의 쇼군 오우치는 백제인이었다’ 와 KBS 역사추적 ‘1400년 만의 귀환–오우치가의 비밀’을 다시보기를 통해 알 수 있다.